책 소개
바다에 목숨을 건 사람들, 만선의 꿈과 파국의 비극을 담다: 천승세의 희곡 3편과 시집 2권을 한 권에
『만선 · 몸굿』은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소설가 천승세가 희곡과 시 장르에서 남긴 뚜렷한 발자취를 집대성한 책입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입선작 <물꼬>를 비롯해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 모집 당선작 <만선>, 그리고 농촌 현실을 담은 <봇물은 터졌어라우> 등 3편의 희곡과, 1989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펴낸 시집 <몸굿>(1995), <산당화>(1998)의 대표작들을 함께 묶었습니다. 소설가로서의 명성 뒤에 가려졌던 천승세의 극작가·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온전히 조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희곡 <만선>은 남해안 어촌을 배경으로 만선의 꿈에 사로잡힌 어부 곰치와 그의 가족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립니다. 부서떼를 쫓아 폭풍 속으로 나간 곰치는 아들과 사위, 갓난아이까지 잃고 마지막 남은 딸마저 자살로 잃습니다. 천승세는 가난과 욕망,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비극을 생생한 전라도 사투리와 서정적이면서도 긴박한 대사로 무대 위에 올렸습니다. <물꼬>는 물 한 방울이 귀한 가뭄철, 논두렁 물꼬를 두고 다투던 두 홀아비가 결국 혼담으로 화해하는 해학을 담았고, <봇물은 터졌어라우>는 과부와 홀아비 사이의 애증을 방죽 봇둑이라는 공간에 압축해 풀어냅니다. 세 편 모두 1960년대 농어촌 민초들의 삶과 언어, 정한을 무대언어로 승화시킨 수작입니다.
시집 <몸굿>과 <산당화>는 천승세가 환갑을 넘긴 나이에 펴낸 시편들로, 생명과 죽음, 노년과 사랑, 역사와 민중에 대한 뜨거운 시선이 전라도 말맛과 뒤섞여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불면송’, ‘옥수수’, ‘몸굿’, ‘임종’, ‘한로단가’ 등의 연작은 노년의 고독과 욕망, 억겁의 한을 무속적 리듬과 격정적 언어로 형상화합니다. 김남주를 추모하는 시편들은 동지에 대한 애도이자 시대에 대한 증언이며, ‘금단이년 사설’, ‘호남 잡가’ 등은 목포와 전라도 땅에 뿌리내린 작가의 정체성을 판소리 가락처럼 펼쳐 보입니다. 이 책은 소설가 박화성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문학으로 살았던 천승세가 세 개의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남긴 진솔하고 뜨거운 기록이자, 한국 문학사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다면적 작가정신의 증거입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책머리에> 중에서]
선친께서 돌아가신 후 4년, 그동안 미완으로 남은 장편소설 ‘선창 1,2’, ‘빙등’, ‘순례의 카나리아’, ‘봉기사의 다락방’ 네 편을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 많은 독자와 후학들에게 다정한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예전 발표 되었던 작품들, 발간되었던 작품집을 구해 읽기 힘드니 모아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천승세 대표작품선’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중.단편 소설 34편을 소설집 (3권)으로, ‘만선’등 3편의 희곡과 ‘몸굿’, ‘산당화’ 2권의 시집을 한 권으로 묶어 우선 발간하기로 하였습니다.
선친께서는 다양한 문학 장르를 모두 정식 등단하여 다수의 역작을 남기셨습니다. 이는 늘 당신이 강조하였던 나태해지지 않으려는 ‘신인정신’과 이쯤이면 된다는 적당한 정도를 완강히 거부하는 ‘예술혼의 엄절한 훈계’ 덕이었을 것입니다. 이 ‘대표작품선’ 발간이 많은 독자들과 후학들에게 감상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서평
무대 위에서 울부짖고, 지면 위에서 춤추는 목숨들: 장르를 넘나든 천승세의 문학 세계
천승세는 소설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희곡과 시에서도 뚜렷한 성취를 남긴 작가입니다. 1964년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 모집에서 당선된 <만선>은 남해안 어촌의 비극을 무대 위에 생생히 올린 걸작입니다. 만선의 꿈에 사로잡혀 폭풍 속으로 배를 몰고 나간 곰치는 아들과 사위를 잃고, 갓난아이마저 바다에 띄워 보내며, 마침내 딸의 자살로 모든 것을 잃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쓰인 대사는 절박하고 서정적이며, 인간의 욕망과 자연 앞의 무력함을 극적 긴장 속에 밀도 있게 그려냅니다. <물꼬>와 <봇물은 터졌어라우>는 물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해학과 정한을 버무려내며, 1960년대 농촌 현실과 민초들의 언어를 무대언어로 승화시킵니다.
천승세가 환갑이 넘어 펴낸 시집 <몸굿>과 <산당화>는 생명과 죽음, 노년과 욕망, 역사와 민중을 무속적 리듬과 격정적 언어로 형상화합니다. ‘불면송’, ‘몸굿’, ‘임종’ 연작은 늙음과 죽음 앞에 선 존재의 고독과 갈망을 담았고, 김남주를 추모하는 시편들은 동지에 대한 애도이자 시대에 대한 증언입니다. ‘금단이년 사설’, ‘호남 잡가’ 등은 목포와 전라도 땅에 뿌리내린 작가의 정체성을 판소리 가락처럼 펼쳐 보입니다. 전라도 사투리와 민요적 가락, 무속적 이미지가 뒤섞인 독특한 시적 언어는 천승세 문학의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 책은 소설가로만 기억되던 천승세를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재조명하게 합니다. 세 개의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민초들의 삶과 언어, 정한을 형상화한 그의 문학 세계는 한국 문학사에서 다시 읽혀야 할 가치를 지닙니다. 무대 위에서 울부짖고 지면 위에서 춤추는 목숨들, 그 뜨겁고 처절한 기록 앞에서 우리는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천승세의 희곡과 시를 통해 독자 여러분은 1960년대 남도의 공기와 말맛, 그리고 한 작가의 신인정신과 예술혼을 온몸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자 소개
천승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소설가 박화성의 아들로 태어나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2년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점례와 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물꼬’가 입선하고 같은 해 3월 국립극장 장막극 현상 모집에 ‘만선(3막 6장)’이 당선되었다. 1989년 창작과 비평(가을호)에 시 ‘축시춘란’ 외 9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포대령’ ‘황구의 비명’ ‘낙월도’ ‘이차도 복순전’ ‘혜자의 눈꽃’ ‘신궁’ 등이 있으며, 60여 편의 중〮단편, 5편의 장편소설과 미완의 장편 3편, 희곡 ‘만선’ 등과 <몸굿>, <산당화> 2권의 시집, 4권의 수필집, 3권의 꽁뜨집 외 다수가 있다.
신태양사 기자, MBC 전속작가, 한국일보 기자로 활동했고,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이사,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과 회장단 상임 고문을 역임했다.
1965년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1975년 제2회 만해문학상, 1982년 제4회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 1989년 제1회 자유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암으로 투병 중 전신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어 약 2개월 와병 후 2020년 11월 27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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