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 그리고 왕자와 나: 수묵으로 그린 자연과의 교감
이 책은 수묵 화가 이지연이 2024년 봄, 전라남도 해남의 산이정원에서 만난 꽃들과 함께 보낸 사계절의 기록입니다. 동백, 수선화, 튤립, 갓꽃, 양귀비, 장미, 접시꽃, 국화, 동백까지 계절마다 피고 지는 120여 점의 꽃 그림은 단순한 식물 도감이 아니라, 작가가 자연과 교감하며 겪은 예술적 전환의 순간을 담은 회화적 서사입니다. 각 꽃마다 개화 시기와 꽃말을 함께 적어 독자들은 작가가 만난 계절의 리듬을 따라가며, 자연이 건네는 언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지연은 오랜 시간 추상적 수묵 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입니다. 그러나 2024년 봄 산이정원을 방문하면서 작가의 조형 세계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합니다. 남도의 찬란한 햇빛과 바다, 산, 그리고 계절마다 교차하는 풍부한 식생은 작가에게 더 이상 관념 속 풍경이 아니라, 감각과 감성이 직접 만나는 구체적 경험의 장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전통 수묵의 절제된 조형 언어를 잠시 내려두고, 꽃의 고유한 색과 형태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생의 시간이 아깝다는 깨달음과 함께 ‘여름도 좋아해야 한다’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 책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서사가 은유적으로 등장하여, 꽃과 왕자, 그리고 작가 자신이 서로를 비추는 회화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2025년 봄, 다시 찾아온 계절과 함께 작가의 작업은 또 한 차례 전환을 맞이합니다. 자연의 꽃은 엄격하게 절제된 추상의 꽃으로, 어린왕자의 문학적 서사는 회화적 서사로 나아가며, 한 해 동안 응축된 감각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순간으로 폭발합니다. 이 책은 동시대 수묵 작업이 자연과 어떻게 만나고, 감각의 변화를 동반한 회화적 전환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자, 계절의 흐름 속에서 꽃과 함께 성장하는 한 예술가의 내밀한 고백입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작가노트 중에서]
나는 여름을 싫어했다. 여름이 오기도 전 봄부터 여름이 올 것을 걱정했다. 숨 막히는 더위는 내가 증발해 버리는 듯 정신까지도 혼미해진다. 어느새 나이를 마흔도 훌쩍 넘겨버리고, 번쩍 든 생각이 내가 여름을 싫어해 버리면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이다. 여름도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름에도 나름대로 열심히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꽃이 피고 지는 것만 알았다. 꽃은 잎과 달리 모양과 색이 화려하고, 향기도 나고, 빨리 피었다 지기 때문에 좀 특별한 취급을 받는 거라고 생각 해온 것 같다. 내가 시간이 아까워진 이후로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었다. 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피고 있었다. 꼭 꽃을 보는 일이 아니더라도 소중하고 보기도 아까운 그 마음이 나에겐 꽃이다.
서평
시간이 아까워진 순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사계절의 꽃들
우리는 봄에 꽃이 핀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꽃은 늘 피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지연 작가는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여름을 싫어해 버리면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을, 그리고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우리 곁에서 피고 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그 깨달음 이후 작가가 전라남도 해남 산이정원에서 만난 꽃들과 함께 보낸 한 해의 기록입니다. 튤립, 양귀비, 장미, 접시꽃, 국화, 동백까지 120여 점의 수묵 회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식물 그림이 아니라,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은 한 예술가가 자연과 교감하며 겪은 예술적 전환의 증거입니다.
이지연은 오랜 시간 추상적 수묵 언어를 다뤄온 작가입니다. 그러나 산이정원에서 만난 꽃들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 수묵의 절제된 조형을 잠시 내려두고, 꽃 고유의 색과 형태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도록 이끌었습니다. 남도의 햇빛과 바다, 산, 그리고 계절마다 교차하는 식생은 작가에게 더 이상 관념 속 풍경이 아니라, 감각과 감성이 직접 만나는 구체적 경험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서사가 은유적으로 등장하여, 꽃과 왕자, 그리고 작가 자신이 서로를 비추며 독자에게 서사적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킵니다. 행촌미술관 이승미 관장의 글은 이 변화를 ‘수묵 화가 이지연의 전환’이라 명명하며, 동시대 수묵 작업이 향할 수 있는 미학적 확장의 한 단면을 제시합니다.
지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두렵거나, 일상 속 작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것 같아 허전한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이지연의 꽃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곁에서 늘 피고 지는 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그리고 그 꽃들을 보는 마음 자체가 또 하나의 ‘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일상 속 계절과 자연이 전혀 다른 빛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저자 소개
이지연
197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2019년 홍익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 《어린왕자에게 꽃을》(인제 기적의 도서관, 스페이스 결, 행촌미술관, 2025), 《산이왕자》(산이정원 산이갤러리, 2024), 《Thailand Night》(FAG ART GALLERY, Rajamangala University, Thailand, 2024), 《秋華》(화엄사성보박물관, 2023), 《수묵유랑》(겸재정선미술관, 2022), 《화엄계 華嚴溪》(화엄사 성보박물관, 2021), 《세계유산 대흥사 여름부터 겨울까지》(해남 대흥사 백설당, 침계루, 2019) 등이 있다.
또한 《Triangle Project》(SOL Gallery, Melbourne, Australia, 2024),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대흥사 백설당, 2021), 《풍류남도 아트프로젝트》(행촌미술관, 2023, 2022), 《한국현대회화 동양화 새 천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08) 등 다수의 국내외 전시 및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작품은 주시카고 총영사관, 주코스타리카 대사관, 주볼리비아 대사관, 행촌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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