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천년 세월을 견뎌온 노송의 자태, 네 곳의 숲에서 길어 올린 ‘세월의 미’
『노송의 미』는 사진가 제정철이 경북 경주의 흥덕왕릉과 삼릉숲, 충북 보은의 임한리 솔밭, 전북 남원의 부절리 소나무숲을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아온 기록입니다. 어린 시절 뒷동산 소나무 숲을 놀이터 삼았던 작가는 새벽마다 숲으로 달려가 먼동이 트는 순간의 솔피와 겹겹이 쌓인 세월의 결을 사진으로 옮겼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모인 네 곳의 노송 숲을 한 권에 묶어, 소나무가 지닌 ‘세월의 미’를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흥덕왕릉 숲은 신라 42대 왕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생김새가 특별해 ‘안강목’이라는 별칭을 얻은 신비로운 노송들이 군집해 있습니다. 경주 남산 산책로 초입의 삼릉숲은 왕릉을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둘러선 노송들이 수백 년의 위용을 자랑하며, 충북 임한리 솔밭은 약 270년 전 마을 바람막이로 조성되어 논밭과 어우러진 사계절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주 최씨 선산인 전북 부절리 숲은 쓸모없다 여겨져 베이지 않고 살아남은 굽은 소나무들이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드러낸 채 강인함의 표상으로 서 있습니다.
작가는 안개가 예보된 날이면 잠을 설쳐가며 숲으로 향해, 자욱한 안갯속에서 몸을 비틀듯 서 있는 소나무들의 몽환적인 자태를 포착했습니다. 300×225 대형 판형에 124쪽 전면 흑백 사진으로 구성된 이 작품집은 ‘세한연후지송백지절(歲寒然後知松柏之節)’이라는 옛 구절처럼, 추위 속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소나무의 기상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작가노트 중에서]
어린 시절 뒷동산 소나무 숲은 나의 놀이터이자 추억의 장소였다. 어느샌가 소나무 숲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려간 소나무 숲에 들어서는 순간 깊은 솔향이 나를 반긴다. 먼동이 트는 순간의 소나무 숲은 각양각색의 선과 세월의 깊이만큼 겹겹이 쌓여 있는 솔피의 아름다운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무수한 세월 동안 굳건하고 당당하게 견뎌온 소나무의 모습은 오랜 세월 잘 살아온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소나무 숲의 아름다운 깊이를 다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통하여 그동안 소나무에서 느낀 “세월의 미”를 표현하려 하였고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안개 예보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잠을 설쳐가며 설렘 가득 안고 집을 나선다. 언제나 그랬듯이 캄캄한 어둠 속에 도착한 소나무 숲은 그윽한 솔향기로 나를 반긴다. 겹겹이 쌓인 솔피의 살결이 드러날 때면 천년의 혼을 깨우는 듯하다.
서평
추위 속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소나무의 기상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기상을 알게 된다는 옛 구절처럼, 이 책 속 노송들은 모진 세월을 견뎌낸 자의 당당함을 품고 있습니다. 작가는 네 곳의 숲을 오가며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굽은 줄기와 겹겹이 쌓인 솔피에서 사람의 생을 읽어냅니다. 화려한 색을 걷어낸 흑백 사진은 오히려 소나무가 지나온 시간의 결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흥덕왕릉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삼릉숲의 수호자 같은 위용, 임한리의 사계절 풍경, 부절리의 꺾이지 않는 생명력까지, 네 숲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소나무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특히 새벽안개 속에서 몸을 비틀듯 서 있는 노송의 자태를 담은 사진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게 하는 고요한 몰입을 선사합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느림의 미학을 되찾게 해주는 장면들입니다.
느림과 침묵이 그리운 분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견뎌낸 존재 앞에서 위로받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뒷동산의 흔한 소나무 한 그루조차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제정철이 새벽마다 길어 올린 노송의 시간 속으로, 지금 걸어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저자 소개
제정철
제정철은 사진가이다. 경북 경주의 흥덕왕릉과 삼릉숲, 충북 보은의 임한리, 전북 남원의 부절리 등 전국의 노송 숲을 오랜 시간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번 사진집 『노송의 미 The Beauty of Old Pine』은 사진공간 창(기획 김호종)의 기획으로 헥사곤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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