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골목의 선들을 따라 떠나는 미궁 산책: 부산 원도심을 기록한 사진가의 빛과 그림자
『접선』은 사진가 강양미가 부산의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포착한 빛과 선의 기록입니다. 광안, 초량, 감천, 범천, 수정, 영주 등 부산 원도심의 이름들이 작품 제목에 붙어 있지만, 이 책은 단순히 특정 장소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집이 아닙니다. 오히려 벽면을 가로지르는 전선과 파이프,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과 이끼 낀 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의 궤적을 통해, 작가가 삶의 선택과 방향 앞에서 느꼈던 ‘미궁’ 같은 복잡함과 그 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부산의 쇠락한 골목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끈질기게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마음이 한 올 한 올 새겨진 실타래의 장소입니다.
강양미는 ‘접선(Tangent)’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제목으로 선택하여, 두 개의 원이 한 점에서만 만나듯 우리 삶이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잠시 맞닿았다가 멀어지는 과정임을 암시합니다. 작가는 골목을 천천히 거닐며 벽면의 벌어진 틈, 햇빛을 찾아 뻗어나가는 전선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 선들은 물을 찾아, 빛을 찾아 조금씩 뻗어나가는 간절한 마음이자 삶의 복잡한 이면을 드러내는 흔적입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기록된 스물다섯 점의 사진은 화려한 색감과 극적인 구도 대신, 고요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일상의 미궁을 길로 바꾸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헥사곤 사진선집’의 네 번째 작품으로, 2024년 부산광역시와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습니다. 강양미는 동강국제사진제(2021) 참여와 사진집단 ‘진공(ZINGONG)’에서의 활동 등을 통해 도시를 기록하는 사진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부산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넘어,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과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길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발견하는 단순하고 차분한 고요를 함께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작가노트 중에서]
아침햇살이 퍼질 무렵,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이끼 낀 벽을 쓰다듬으며, 페인트가 벗겨진 철제 대문과 틈이 벌어진 돌계단을 지나다 보면 길은 갈라지고 또다시 합쳐진다. 좁고 복잡한 길에서 문득 발이 멎는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어렵다. 일상의 복잡함이 같이 얽히면 이곳은 갑자기 ‘미궁’ 같다.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힘겹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과 매번 마주한다. 미궁을 벗어나는 방법, 신화 속 ‘아리아드네(Ariadne)의 실’을 떠올려 본다. 내가 붙잡고 찾아갈 실타래를 찾아야 한다.
다시 길이 시작되고 내가 찾은 실타래를 따라간다. 크기도 색깔도 형태도 다양한 건물의 벽면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들은 햇살에 따라 반짝이기도 하고, 숨어버리기도 하고, 불현듯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빛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전선의 움직임, 벽면을 가로지르는 파이프, 전깃줄, 가스라인, 벽의 벌어진 틈….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물을 찾아 햇빛을 찾아 조금씩 조금씩 뻗어나가는 간절한 마음들이 느껴진다.
서평
부산의 골목에서 길을 찾는 법: 사진으로 읽는 일상의 미궁과 출구
강양미의 사진은 조용합니다. 화려한 볼거리나 극적인 순간을 좇지 않고, 대신 부산 원도심의 평범한 골목 벽면에 새겨진 빛과 그림자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 고요한 이미지 안에는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과 방향을 잃은 듯한 막막함, 그리고 그 안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벽면을 가로지르는 전선과 파이프를 ‘아리아드네의 실’로 읽어내며, 미궁 같은 골목이 결국 길이 됨을, 복잡한 일상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 순간 사진은 단순한 풍경 기록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한 은유가 됩니다.
이 책은 부산을 배경으로 하지만, 부산에 대한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갈림길,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궤적에 대한 사진 에세이입니다. 광안, 초량, 감천, 수정, 범천, 영주 등 작품 제목에 붙은 장소 이름들은 작가가 걸었던 길의 표지이자, 동시에 우리 각자가 걷는 일상의 미로에 대한 암호입니다. 강양미의 카메라는 그 미로 속에서 벌어진 틈과 뻗어나간 선들을 통해, 힘겹지만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정직하게 기록합니다.
길을 잃은 듯한 순간, 방향을 잃은 듯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강양미의 사진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붙잡고 찾아갈 실타래’를 각자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미궁은 길이 되고 단순하고 차분한 고요가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발밑에 놓인 평범한 골목길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저자 소개
강양미
항상 길 위에서 행복했다.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을 꿈꾸며 새로운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일상도 일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진을 적으며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사소하고 생각하던 주변 사물들이 새롭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매료되어 다양한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에는 오래된 주택가와 골목에서 만난 다양한 선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 헤매던 나의 여정을 담았다. 영월에서 개최된 동강국제사진전(2021)에 작품을 전시하였고, 사진집단 ‘진공(ZINGONG)’에서 도시를 기록하는 사진가로 활동하며 출판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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