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전쟁이 남긴 이름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새겨진 기억과 추모의 기록
『그날들』은 사진가 정춘산이 2017년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촬영하며 담아낸 추모와 기억의 시각 기록입니다. 이 책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유엔군 전사자들의 묘지이자, 동시에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공원이라는 이중적 공간을 흑백 사진으로 담아냅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17세의 어린 나이로 전사한 호주군 제임스 패드릭 도슨트, 30년간 유엔기념공원을 찾다 그곳에 안장된 영국군 제임스 그룬디, 그리고 형이 전사하는 모습을 목격한 후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던 캐나다군 허시 형제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정춘산은 전쟁의 공포와 생존 후의 고통이라는 ‘그날들’을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본문에는 수녀이자 시인 이해인이 헌정한 시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가 실려 있어, 낯선 땅에 잠든 전사자들에 대한 깊은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시인 동길산은 정춘산의 사진이 지닌 중의적 시선—무거우면서 가볍고,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생명을 이야기하는—을 포착하며, 작가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민주적 시선으로 유엔기념공원을 오래오래 응시해 왔음을 역설합니다. 정춘산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각과 감각의 혼융 속에서 전쟁의 기억을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불러내며 과거와 현재, 죽음과 생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은 부산광역시와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발간되었으며, 정춘산 작가가 첫 번째 개인전 ‘익숙해진 기억’을 통해 제기했던 질문—우리는 유엔기념공원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을 더욱 깊이 있게 펼쳐냅니다. 흑백 사진 속에서 밝음과 어둠, 과거와 미래, 단절과 이음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정춘산만의 순정한 마음은, 독자로 하여금 유엔군 1,957,733명의 ‘그날들’에 대해 공감하고 기억하도록 초대합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과 그들이 남긴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사진가의 말 중에서]
제임스 패드릭 도슨트 호주 참전용사가 유엔군 참전용사 전사자 중 17세의 어린 나이로 전사한 그날. 제임스 그룬디 영국군 참전용사가 참전 후 30년간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그날들. 그리고 운명 후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그날. 아치 허시 캐나다 참전용사는 형 조셉 허시의 배웅을 받으며 한국전쟁에 참전. 3개월 후 형 조셉 허시도 동생 아치 허시가 걱정되어 몰래 자원입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치 허시가 같은 연대 같은 전투지에서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형 조셉 허시를 목격한 그날. 전쟁이 끝난 후 아치 허시는 캐나다 변두리 마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나 형 조셉 허시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과 정신적 후유증으로 평생을 괴로워 했던 그날들.
2012년 4월25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캐나다 참전용사 허시형제의 추모식과 합장식이 거행된 그날. 레옹 보스케 벨기에 참전용사의 안장식이 2023년 11월15일 유엔기념공원에서 거행된 그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의 공포와 생존 후 겪어야만 했던 고통의 그날들은 우리의 무관심으로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통해 유엔군 1,957,733명의 《그날들》에 대해 공감과 관심을 두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평
흑백 사진 속에 새겨진 이름들, 잊혀져 가는 전쟁의 기억을 오늘로 불러내는 추모의 시선
우리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얼마나 자주 기억할까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이곳은 공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유엔군 전사자들이 잠든 묘지입니다. 정춘산 작가는 이 이중적 공간을 2017년부터 해 뜰 때와 해 질 때, 사시사철 찾아가며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닙니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전사한 호주군, 형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후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던 캐나다군 허시 형제, 그리고 30년간 유엔기념공원을 찾다 그곳에 안장된 영국군의 이야기처럼, 전쟁이 남긴 구체적인 ‘그날들’입니다. 정춘산의 사진은 무거우면서도 밝고,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생명을 이야기하는 중의적 시선으로 우리가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 불러냅니다.
이 책에 실린 흑백 사진들은 시각과 감각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시인 동길산의 말처럼, 정춘산의 사진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지게 합니다. 추모식에서 ‘TURN TOWARD BUSAN’이라는 영어 팻말을 든 아이의 뒷모습, 묵념하는 사람들의 고요한 자세, 그리고 돌 위에 새겨진 이름들. 이 모든 장면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방점은 언제나 미래에 있습니다. 작가는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민주적 시선으로, 유엔군 1,957,733명의 희생을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승화시킵니다. 수녀이자 시인 이해인이 헌정한 시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는 이러한 추모의 마음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전쟁의 상흔과 그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분들, 그리고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정춘산의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깊이로 다가옵니다. 책을 넘기는 동안, 당신은 낯선 땅에 잠든 이름 없는 전사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그들의 희생이 오늘 우리의 평화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날들』은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라, 잊혀져 가는 기억을 오늘로 불러내어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감사로 새기는 추모의 기록입니다.
저자 소개
정춘산
2017년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촬영한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많은 사람이 찾는 도심 한가운데 묘지이면서 공원이다.
유엔기념공원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의문을 가진 첫 번째 개인전 ‘익숙해진 기억’으로 《갤러리 수정》에서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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