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길 위에 남은 자국, 시간 속에 스며든 말들: 박루미가 포착한 일상의 숨결과 기억의 풍경
이 책은 시인 박루미가 길바닥과 갯벌, 바람과 햇살 사이에서 포착한 일상의 자국들을 담은 시집입니다. 김포 사우동 네거리 할머니 앞에 놓인 늙은 호박과 늦상추, 남극 세종기지에서 마주한 빙산의 경외감, 대부도와 해남의 바닷길을 걸으며 맡은 갯내와 소금밭 풍경이 시인의 눈과 귀를 통해 섬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을 넘어, 사라져가는 말들과 잊혀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흐르는 시간의 결을 붙잡아 두려는 시인의 애틋한 손길이 느껴집니다.
책은 네 개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잊혀지는 말>에서는 어머니가 남긴 사투리와 일상 속 사라지는 언어들을 되새기며, <봄그늘 지는>에서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땅과 나무가 보내는 신호를 감각적으로 포착합니다. <불씨>는 내면의 불꽃과 기억의 잔불을 지피는 성찰의 시편들로, <대부도, 해남에서>는 대부도와 해남 일대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바다, 절집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강화에 들어와 살면서 첫 시집 <는 내린 날 아침>을 냈고 이후 뒤로 빈채 시집 <강화 음성>을 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다시 강화살이에서 쓰여진 시들을 모아 일상 속 성소와 자연 앞에서 깨닫는 이숙의 시간을 엮었습니다.
박루미의 시는 화려한 수사나 관념적 비약 없이, 걷고 보고 맡고 듣는 감각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 스며든 것은 누군가의 발자국, 누군가의 손길, 그리고 언젠가 우리 곁을 지나간 사람들의 온기입니다. 길 위에 자국을 남기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집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시를 읽고 나면 독자들은 자신이 밟고 지나온 길바닥, 그 위에 남은 흔적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시인의 말 중에서]
오랜 시간 가며 들려오는 말 잊혀질까
모두어 글로 적습니다
좁은 틈 사이 들어오는, 바람에
속닥이듯 들리는 어떤 말
때로 가만가만 어깨를 두드리며 일러주는 말
오랜 시간 마음 안에 굳어온 말들을
이 여름, 헤아립니다
서평
“여기, 살아온 날의 자국이 있습니다” — 일상을 기억으로 바꾸는 시인의 손길
우리는 매일 길을 걷지만, 그 길 위에 무엇을 남기고 지나가는지 돌아보는 일은 드뭅니다. 박루미 시인은 김포 사우동 네거리 할머니 앞의 늙은 호박, 대부도 갯바람에 실려 오는 소금 냄새, 그리고 엄마가 하시던 “허쳐 놓아라, 다독다독해라”는 사투리를 잊지 않고 기록합니다. 이 시집은 그저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말과 사람,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붙잡아 두려는 시인의 애틋한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약대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강화에 들어와 첫 시집 <는 내린 날 아침>과 뒤로 빈채 시집 <강화 음성>을 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다시 강화살이와 대부도·해남 여행에서 만난 일상의 성소를 섬세하게 직조해 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과장 없는 언어로 일상의 숨결을 그대로 전한다는 점입니다. “점자길” 위를 두드려 보며 가는 사람과 앞을 보고 가는 사람이 같이 걷는 풍경, “누굴까” 하고 궁금해하는 헌책방 쪽지와 빵집 탁자 위의 자욱, 그리고 “명상” 시간에 눈감고 앉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장면들은 모두 우리의 일상이지만 시인의 시선을 거치며 비로소 의미를 얻습니다. 네 개의 연작 <잊혀지는 말>, <봄그늘 지는>, <불씨>, <대부도, 해남에서>는 계절과 장소를 따라 흐르면서도, 결국 ‘살아있음’과 ‘기억함’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됩니다.
일상에 지쳐 자신이 남긴 흔적조차 돌아보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 시집을 권합니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당신이 오늘 밟고 지나온 길바닥, 그 위에 남은 발자국, 그리고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남겨둔 작은 흔적들이 새삼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박루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크게 울리지 않지만 오래 남습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자신의 삶 위에도 소중한 자국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자 소개
박루미
성균관대학교 약대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강화에 들어와 살면서 첫 시집
『는 내린 날 아침』을 냈고
그 뒤로 두 번째 시집 『강화 음성』을 냈다.
이제 다시 강화살이에서 쓰여진 시들을 모아
시집 『길 위에 자국』을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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