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30년 조각가의 여정: 사물과 일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껍질’의 미학
『박소영』은 한국현대미술선 007번째 작품집으로, 조각가 박소영이 1986년부터 2012년까지 약 30여 년간 펼쳐온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집대성한 기록물입니다. 독일 유학 시절 언어와 사물의 관습을 비트는 개념미술에서 출발해, 2000년대 이후 ‘껍질(Crust)’이라는 고유한 조형 언어로 전환하기까지, 작가의 사유와 실험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작품집을 넘어, 조각에 대한 관념의 틀을 벗기고 일상 속 사물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려는 한 예술가의 치열한 여정을 보여줍니다.
박소영의 대표작인 ‘껍질’ 연작은 버려진 의자, 화분, 옷걸이 같은 무용한 사물에 인공 나뭇잎과 투명 필름을 붙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수천 번의 집요한 반복 노동을 통해 사물의 표면을 초록 껍질로 뒤덮으며, 그 과정에서 ‘반복하다(Over and over)’와 ‘덩어리(Deongeori)’라는 두 축의 철학을 실천합니다. 이 책에는 황신원 큐레이터와 진휘연 교수의 비평이 실려 있어, 박소영 작업이 단순히 아름다운 표면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표와 기의의 경계에서 사물의 존재를 되묻고 삶과 예술의 접점을 탐구하는 과정임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또한 작가 자신의 작업노트는 ‘아름다움은 치유이자 서러움’이라는 고백을 통해 작품의 내밀한 정서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 책은 ‘잡생각’, ‘껍질’, ‘반복하다’, ‘라이트’, ‘조각의 껍질’ 등 주요 시리즈를 총망라하며, 설치 전경과 개별 작품 이미지 약 100여 점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전시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설치미술의 운명을 넘어, 이 책은 박소영의 조각이 어떻게 관념에서 감각으로, 딱딱함에서 유연함으로, 영원함에서 덧없음으로 변모해왔는지를 영구적인 아카이브로 남깁니다. 독자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초록 껍질과 유기적 덩어리들을 통해, 일상 속 사소한 사물이 지닌 생명력과 예술의 근원적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책 속으로
[본문 발췌: 작업노트 중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삶의 체험 속에서 일상 속의 사물들이나 상황들, 이런 보편적 개념들을 주관적이기 보다 나름대로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지금은 내 자신을 누르고 있는 윤리적인 이분법에서, 재미없는 일상의 허구성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한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스럽고 유연하게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몇 년간 지속 되고 있는’껍질’ 작업은 단단하지 않고 약하며, 작업의 비닐표면을 통해 비쳐서 보여지고, 형태가 고정되어지지 않고 유동적이다. 또한 필름위에 인쇄된 나뭇잎은 세월이 흐르면 미세하게 변색되거나 색이 탈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껍질’작업을 통해 조각의 안과 밖, 속과 겉이 아닌, 좀 더 다의적으로 읽혀지리라고 생각된다.
의자는 다리가 잘린 채 바닥으로 낮게 자리 잡고, 화분에는 구멍이 뚫리고, 삼각형 옷걸이는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나는 어떤 사물들의 기능과 역할과 효용성을 변형시키는 작업에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묘한 형태나 새로운 사물로 탈바꿈한다. 나는 이런 사물들을 녹색 이파리로 뒤덮고 피부를 이식받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버려진 삶의 부스러기들에게 생명 같은 착시현상을 주고 싶었다.
서평
버려진 사물에 입힌 초록 껍질, 조각의 본질을 되묻는 30년의 기록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름답다’는 말을 쓰지만, 정작 그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은 드뭅니다. 조각가 박소영은 무덤가에 핀 진달래를 보며 생애 처음으로 진짜 ‘아름다움’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치유이자 서러움이고, 용기이자 번뇌이며, 결국 숨구멍입니다. 이 책 『박소영』은 그 아름다움을 붙잡기 위해 30년간 사물의 껍질을 벗기고 다시 입히며 조각의 의미를 묻고 또 물었던 한 예술가의 진솔한 기록입니다.
박소영의 작업은 언뜻 단순해 보입니다. 버려진 의자, 깨진 화분, 쓸모없는 옷걸이 위에 인공 나뭇잎을 빼곡하게 붙이는 반복 노동. 하지만 그 노동의 끝에서 탄생한 초록 껍질은 사물을 전혀 다른 존재로 변모시킵니다. 황신원 큐레이터는 그것을 ‘역설의 껍질’이라 불렀습니다. 채울수록 비워지고, 감출수록 드러나는 조각. 진휘연 교수는 박소영이 서구 철학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통합적 감성으로 사물을 덮어준다고 분석합니다. 단단함과 영원함을 숭배하던 조각의 전통에 맞서, 그녀는 유동적이고 덧없고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탈색될 수도 있는 재료를 선택함으로써 예술의 근원적 가치를 되묻습니다.
이 책은 조각을 사랑하는 이들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권합니다. 박소영의 손끝에서 피어난 초록 껍질과 덩어리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사물은 결국 변하고 사라지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추구할까요?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길가에 버려진 낡은 의자 하나조차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박소영이 30년간 껍질을 붙이며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삶과 예술의 본질입니다.
저자 소개
박소영
1961년 속초 출생, 1985년 인하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1987년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미술대학교 전공심화과정을 졸업하였다.
2011년 ‘雜-생각'(갤러리 비원, 서울), 2010년 ‘going nuts'(통의동 보안여관, 서울), 2007년 ‘오늘의 작가 – 반복하다'(김종영미술관, 서울), 2006년 ‘덩어리'(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서울), 2004년 ‘라이트'(가갤러리, 서울), 2003년 ‘꽃, 사물'(스타타워갤러리, 서울), ‘초록과 짐'(갤러리 피쉬, 서울), 2000년 ‘조각의 껍질'(금산갤러리, 서울) 외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2012년 ‘풍경의 경계'(스페이스 빔, 인천), ‘High Times, Hard Times'(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서울), 2011년 ‘산수정경'(스페이스몸미술관, 청주), ‘쉼'(경기도미술관, 안산), 2010년 ‘현대미술의 선물'(전북도립미술관, 전주), ‘REMIND 그곳을 기억하다'(영은미술관, 광주), 2009년 ‘연금의 手'(interalia Art Company, 서울), ‘치유: 극적인 회복'(리나갤러리, 서울), ‘득도 Archive'(자하미술관, 서울), 2008년 ‘삼각주, 2008 대구텍스타일아트 도큐멘타'(대구문화예술회관), ‘오늘의 한국조각 2008 – 조각의 허물 혹은 껍질'(모란미술관, 남양주), 2007년 ‘Anyang Public Art Project 2007’, ‘It takes Two to Tango'(금호미술관, 서울)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2000/2002년 경안창작스튜디오(영은미술관, 광주), 2004/2005년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작품은 미술은행(인천문화재단), 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안양공공예술재단), 아트선재미술관(서울), 미술은행(문화관광부), 신천지미술관(제주), 제주조각공원(제주)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인하대학교 예술체육학부 미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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