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곤이 새롭게 소개하는 국내 문학, 윤정현 작가의 수필집을 소개합니다. 강진 고향마을로 낙향해 글을 쓰는 작가는 일상의 풍경에 비추어 삶을 풀어냅니다. 담담히 적어 내린 그의 이야기는 익숙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가 목도한 삶의 굴곡과 시대의 풍경은 이 책에 기록된 일상 속에 가볍지 않은 고뇌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수필을 엮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독자들이 아주 잠깐 멈춰 서서 삶을 되돌아보는 작은 반환점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책 속으로
-본문 중에서-
광주 도심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고향마을 빈집으로 간다. 생각하면 아득한 길, 회귀의 수순은 번잡하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아득하다. 나이 오십 살이 채 안 되는 동안 나는 무슨 꿈을 꾸어왔을까? 5.18이 일어난 해부터 시골 생활을 벗어나 도회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30년째다.
어느 시골 마을이든 빈집이 넘쳐흘러서 깨끗이 치우고만 산다면 대환영이었다. 대충 1~2백만 원 정도 들여서 수도, 보일러, 창틀, 전등 같은 것들을 손보면 세간을 들여놓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귀농이니 귀향이니 하는 종류의 호사스러운 말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뿐. 시골집에서 광주 도심 사무실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밖에 안 걸린다.
늘어날 기름값은 감수하기로 했다. 미처 백 킬로가 못 되는 길, 그나마 내 차는 기름 값이 조금 덜 드는 편이니 편도 7천 원, 왕복 만 오천 원 정도면 충분하다. 오가는 길거리에서 기름을 태우는
환경오염은 어찌할 수 없으리. 애당초 나는 어느 한 낱말로 귀결되는 절대가치를 섬겨본 적 없으니, 또렷한 지주대 없이 그냥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려볼 참이다.
내게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삶의 방정식은 도저히 해결 난망의 난수표만 같다. 그나마 남은 힘을 소진하고 싶지 않다.
산벚꽃이 피겠다. ● 본문 중에서
서평
그가 사는 명발당은 다산의 하피첩이 태어난 곳이다. 황혼의 아내가 보내온 헤진 치마폭에 그려낸 매조도와 글씨들… 초례청에 선 딸에게 꽃 속의 새처럼 다정하게 살라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그곳 해남윤씨 강진 항촌파의 후손으로 태어난 윤정현은 광주 비엔날레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그가 기적처럼 일어나 재활 후 낙향하여 주인 잃은 종갓집 명발당에 거처를 정한지가 십수 년이다. 그는 유배자의 심정으로 고향 땅 후미진 곳을 떠돌며 고독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려진 사연들은 근대화 이전 공동체적 삶이 훼손되기 전, 고향 마을의 감각과 풍경들이 살아 있다.
슬픈 가족사와 못난 이웃들의 초상을 그려낸 그의 회상은 마치 백석의 유년이 담긴 시편이나 질마재 신화에 펼쳐내던 서정주의 노래처럼 애틋하다 못해 화사한 아름다움을 뿜어 낸다.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가 운문보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직조하는 산문에 뛰어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마치 다산이 부인의 노을빛 치마에 회한으로 심정으로 수묵을 운필 해 가듯 그려낸 우리 시대의 하피첩을 보는 듯하다. 부디, 그의 딸 희원의 혼례마당에 이 책이 헌사 되기를…. ● 이형권 / 시인
목차
제1부 고향에 돌아와서
제2부 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
제3부 바람도 울고 넘는 고개
제4부 흔적
저자소개
윤정현
1963년 강진군 도암면 수양리에서 태어났다. 도암중학교를 마치고 광주 숭일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그해 1980년 오월 광주를 만났다. 그 후 가슴앓이를 하듯 오월의 아픔을 껴안고 분노와 번민의 시간을 보내다 시인을 꿈꾸며 전남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새 세상을 꿈꾸던 열망의 80년대를 교정과 거리에서 휩쓸려 다니며 문학청년으로 살았다. 대학 시절 광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야학 집단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시 「들불야학」을 5월시 동인지에 발표했고,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에 가족사의 애환이 담긴 자전적 성장기 「동백꽃」을 발표했다. 졸업 후 월간 『사람 사는 이야기』(편집장), 도서출판 『광주』(대표), 광주비엔날레(출판, 자료 담당), 강진아트홀(큐레이터) 등에서 일했다. 2009년 30년 동안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남윤씨 항촌파 종가이자 다산 정약용의 지우였던 윤서유의 옛집 명발당(明發堂)에 거처를 정하고 여러 방식의 지역 활동과 남도 문화예술에 관한 미학적 탐색이 깃든 글쓰기를 하고 있다.
[도서] 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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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헥사곤이 새롭게 소개하는 국내 문학, 윤정현 작가의 수필집을 소개합니다. 강진 고향마을로 낙향해 글을 쓰는 작가는 일상의 풍경에 비추어 삶을 풀어냅니다. 담담히 적어 내린 그의 이야기는 익숙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가 목도한 삶의 굴곡과 시대의 풍경은 이 책에 기록된 일상 속에 가볍지 않은 고뇌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수필을 엮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독자들이 아주 잠깐 멈춰 서서 삶을 되돌아보는 작은 반환점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책 속으로
-본문 중에서-
광주 도심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고향마을 빈집으로 간다. 생각하면 아득한 길, 회귀의 수순은 번잡하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아득하다. 나이 오십 살이 채 안 되는 동안 나는 무슨 꿈을 꾸어왔을까? 5.18이 일어난 해부터 시골 생활을 벗어나 도회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30년째다.
어느 시골 마을이든 빈집이 넘쳐흘러서 깨끗이 치우고만 산다면 대환영이었다. 대충 1~2백만 원 정도 들여서 수도, 보일러, 창틀, 전등 같은 것들을 손보면 세간을 들여놓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귀농이니 귀향이니 하는 종류의 호사스러운 말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뿐. 시골집에서 광주 도심 사무실까지 승용차로 한 시간 남짓 밖에 안 걸린다.
늘어날 기름값은 감수하기로 했다. 미처 백 킬로가 못 되는 길, 그나마 내 차는 기름 값이 조금 덜 드는 편이니 편도 7천 원, 왕복 만 오천 원 정도면 충분하다. 오가는 길거리에서 기름을 태우는
환경오염은 어찌할 수 없으리. 애당초 나는 어느 한 낱말로 귀결되는 절대가치를 섬겨본 적 없으니, 또렷한 지주대 없이 그냥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려볼 참이다.
내게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삶의 방정식은 도저히 해결 난망의 난수표만 같다. 그나마 남은 힘을 소진하고 싶지 않다.
산벚꽃이 피겠다. ● 본문 중에서
서평
그가 사는 명발당은 다산의 하피첩이 태어난 곳이다. 황혼의 아내가 보내온 헤진 치마폭에 그려낸 매조도와 글씨들… 초례청에 선 딸에게 꽃 속의 새처럼 다정하게 살라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그곳 해남윤씨 강진 항촌파의 후손으로 태어난 윤정현은 광주 비엔날레에서 일하다 과로로 쓰러져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 그가 기적처럼 일어나 재활 후 낙향하여 주인 잃은 종갓집 명발당에 거처를 정한지가 십수 년이다. 그는 유배자의 심정으로 고향 땅 후미진 곳을 떠돌며 고독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려진 사연들은 근대화 이전 공동체적 삶이 훼손되기 전, 고향 마을의 감각과 풍경들이 살아 있다.
슬픈 가족사와 못난 이웃들의 초상을 그려낸 그의 회상은 마치 백석의 유년이 담긴 시편이나 질마재 신화에 펼쳐내던 서정주의 노래처럼 애틋하다 못해 화사한 아름다움을 뿜어 낸다.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가 운문보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직조하는 산문에 뛰어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마치 다산이 부인의 노을빛 치마에 회한으로 심정으로 수묵을 운필 해 가듯 그려낸 우리 시대의 하피첩을 보는 듯하다. 부디, 그의 딸 희원의 혼례마당에 이 책이 헌사 되기를…. ● 이형권 / 시인
목차
제1부 고향에 돌아와서
제2부 파도가 밀려와 달이 되는 곳
제3부 바람도 울고 넘는 고개
제4부 흔적
저자소개
윤정현
1963년 강진군 도암면 수양리에서 태어났다. 도암중학교를 마치고 광주 숭일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그해 1980년 오월 광주를 만났다. 그 후 가슴앓이를 하듯 오월의 아픔을 껴안고 분노와 번민의 시간을 보내다 시인을 꿈꾸며 전남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새 세상을 꿈꾸던 열망의 80년대를 교정과 거리에서 휩쓸려 다니며 문학청년으로 살았다. 대학 시절 광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야학 집단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시 「들불야학」을 5월시 동인지에 발표했고,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에 가족사의 애환이 담긴 자전적 성장기 「동백꽃」을 발표했다. 졸업 후 월간 『사람 사는 이야기』(편집장), 도서출판 『광주』(대표), 광주비엔날레(출판, 자료 담당), 강진아트홀(큐레이터) 등에서 일했다. 2009년 30년 동안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남윤씨 항촌파 종가이자 다산 정약용의 지우였던 윤서유의 옛집 명발당(明發堂)에 거처를 정하고 여러 방식의 지역 활동과 남도 문화예술에 관한 미학적 탐색이 깃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책 미리보기
ISBN : 979-11-8968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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